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함께한 졸업식.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함께한 졸업식. 

 

3월 20일. 주민등록상에 나와 있는 법적인 내 생일이다. 내가 태어났을 적에 우리 아버지께서 간경화로 사경을 헤맸기 때문에 어린 핏덩이를 제대로 출생 신고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1년 이상 늦게 이 세상 사람이 되었다. 당연히 동급생들보다도 2년이 늦게 주민등록이 되어 있다. 주민등록상으로만 보면 대학을 들어갔을 때 만 16세 11개월이었으니,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나는 아마도 천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늘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 때도 내 친구들은 대개 형이나 누나들이었고, 회사를 들어갔을 때도 동기생들은 다들 인생 선배들이었다. 

그래도 철없이 이름을 부르고 친구처럼 지냈으니 남들이 볼 때 참 버릇없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일일이 내 나이가 몇이고, 원래는 언제였는데, 이러저러한 사연 때문에 늦어졌다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생년월일을 적어내는 자리에서는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자리 잡아 살고 있다면 이른바 호적이 꼬이는 경우가 수시로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바글대는 동네에 사니 생년월일이 나보다 빠른 후배들도 내게 형 대우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정년퇴직도 1년 6개월이 늦춰졌으니 내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는 분인지도 모르겠다. 

SNS에 회원 가입을 할 때면 대개 생년월일이 뜨지 않도록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것에도 무감각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보다 출생연도가 늦다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부르면 될 일이다. 동생이라고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다면 그게 남는 장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년월일이 공개되어서 그런지 3월 20일 즈음이 되면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도 들어오고, 가끔 커피나 케이크 쿠폰을 받기도 한다. 작년에는 아이들 스무 명이 케이크를 들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아주 뜻밖의 생일 파티를 한 기억도 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글로 썼고, 신문에 그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한국교육신문, 2023. 10. 23., https://www.hangyo.com/news/article.html?no=100155).

 

한 신문에 기고한 '생일' 관련 글.
한 신문에 기고한 '생일' 관련 글.

 

올해도 역시 졸업한 녀석들로부터 톡이 들어왔다. 작년에 인문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도했던 아이들이다. 다들 백일장에 참가해서 글솜씨도 뽐내고, 반듯하게 자라서 교사인 내게도 기쁨을 주었던 아이들이었다. 졸업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문자로 만나는 아이들은 부쩍 자란 느낌이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나랑 동급이 된 것처럼 여기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작년까지는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의 보호자처럼 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내 품에서 벗어난 아이들이라 새처럼 훨훨 제 갈 길을 가는 것만 남은 아이들이다. 교사와 제자로서의 한때 인연은 아름답기는 했지만, 추억으로나 남아 있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이 녀석들의 연락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을 해온다니 기쁘게 생각할 일임은 분명하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마 음력 생일 쓰셨던 걸로 기억해서 오늘이 아닐 것 같기는 합니다만 오늘이 생신이라고 떠서 문자 보내봅니다.”
  “선생님 생신이라고 케이크 들고 교무실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ㅋㅋㅋ 참….”
  “오늘 하루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나중에 꼭 찾아뵐게요.”
  “쌤 제자들답게 학교에서 나름 영향력 있게 한자리씩 맡고 있어요.”

가끔은 이렇게 연락을 받는다. 스승의날 즈음해서, 졸업이나 입학식 무렵에 글로써 아이들의 생각을 엿보게 된다. ‘내가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님이라는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한다. 뭐니뭐니 해도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을 일타 강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수업을 잘하더라도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면, 정을 주지 못했다면 졸업 후까지 이렇게 마음을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이럴 때 하는 말은 역시 ‘있을 때 잘해라’다. 그래야 이후가 있고, 추억은 아름다울 수 있다. 

 

아이들이 톡으로 보낸 생일 축하 글.
아이들이 톡으로 보낸 생일 축하 글.

 

요즘 들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쏟는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다. 학교에서도 이제는 예전처럼 성적을 많이 올려달라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잘못하면 혼내서라도 인간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공부는 집에서 부모인 내가 알아서 시킬 테니까,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불편한 학교생활을 하지 않게만 지켜봐 달라는 식이다. 과거 학부모들은 학교 선생님들보다 고학력인 경우가 많이 없었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신경을 쓸 만한 여유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의 공부는 선생님이 학교에서 알아서 가르쳐야만 했고,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내 아이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몰랐고, 동네 형 동생들 사이에서 알아서 뛰어놀았으니 공부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이지 사교육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공교육의 현장도 달라져야 함은 분명하다. 인성 교육도 중요하고 실력 향상도 중요하다. 동기 부여도 해야 하고 진로 진도 또한 등한시할 수 없다. 학교는 어때야 하는지,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수업과 생활 지도에 앞서 가장 중요한 학교의 역할에 대해 한번 되짚어보고, 어떻게 포지셔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좀 부족한 것 같아 아쉽기는 하다. 고정 관념에 젖어 으레 그렇듯이 수업을 하고 학생 상담을 하고 활동을 지도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듯 생각 없이 행하는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단순히 기능과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온전히 전하고 한 인간으로서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면 내가 품은 모든 것들은 아이들로 인해 세상에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도 더 크게 자라날 것이다.

내게 연락을 해온 아이들과 언제까지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도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인간적이고 괜찮은 교사라면 그게 가능할 거라는 점이다. 한때 중학교를 다니면서 ‘그래도 참 괜찮은 선생님이 있었지’라는 생각 속에 내가 자리할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이런 연락을 종종 받게 될 것이다. 뛰어난 실력과 전달력? 그것도 좋지만 인간적인 매력 쪽에 더 마음이 끌린다. 문자를 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보기 드문 훌륭한 교사일 거라는 뻔한 착각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다. 

 

--------------글쓴이 엄재민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교사가 됐다. 교사 공동체 ‘따로또같이’를 운영하며 젊은 교사들과 간담회, 워크숍, 독서 활동을 하며 25년 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국어 교사로서 ‘인문독서를 통한 나를 찾기’, ‘생각과 표현’ 수업을 통해 읽고 쓰는 활동을 일 년 내내 하고 있다. 매년 백일장 수상 작품집을 별도로 만들어낼 정도로 늘 글과 함께 살아가며, 학생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한다. 블로그에 1일 1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신규 교사들에 대한 위로를 담은 저서 <당신은 제법 괜찮은 교사입니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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