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효과가 뭐예요?”
  “기법은요?”
  “참신하다가 무슨 뜻이죠?”
  “함축적이란 건요?”

시험을 볼 때 주로 나오는 질문들이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졌다. 시험 문제를 냈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특정한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선생님들께 질문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래서 예전 같으면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시험 시간에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학급을 순회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시험을 보는 학급 문을 열 때마다 긴장한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등 고민을 한다. 

시험 문제에 쓰인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아이에게 매번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어를 가르치는 게 국어 수업의 목적은 아니다.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단어 정도는 학생들이 알아서 깨우쳐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읽으면서 유추하는 법도 배우고, 나도 모르는 단어를 만나 대충 이해하면서 맥락을 따라가는 법을 익히면 저절로 어휘력이 좋아지고 생각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그 시험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그나마 질문을 하는 아이들은 내가 이런 걸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만, 질문조차 없는 아이들은 그저 모르는 채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모르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넘기다 보면? 당연히 호기심은 사라지고, 학업에의 흥미도 없어진다. 그러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낼 때는 교사도 무척 신경을 쓴다. 혹시나 가르치지 않은 게 나오지 않을까, 문제 이해를 못 해서 시험을 못 보지나 않을까, 다른 반과 점수 편차가 심하면 어떻게 하나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 점수가 높아도 걱정, 낮아도 걱정이다. 그냥 문제없는 문제만을 출제했다고 만족할 수가 없다. 문제 풀이 과정 하나를 통해서도 아이들은 성장해야 하고, 모든 교육 활동은 그런 면에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시험이 평소 공부를 확인하는 것이니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얼마나 아이들에게 잘 전달력 있게 말하는지가 우선적인 고민거리다. 어려운 건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쉽게 설명을 하는가이다.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써야 하고, 개념을 익혀서 스스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 수업 중 지도서에 등장하는 어휘 정도는 교사도 써야 하고, 이런 어휘들이 시험 문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에 대처하는 법은? 그런 어휘를 알아야 한다. 선생님이 수업 중 사용하는 어휘들을 마냥 쉽게만 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더라도 필수적인 낱말들을 넣어서 말해야 하고, 그 개념을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중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 국어를 어려워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많은 단어가 총알처럼 나를 향해 달려드는데, 그것을 일일이 구분해서 개념을 파악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1학년 국어 첫 단원에서는 시를 배운다. 교과서마다 순서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 학교에서 채택한 국어 교과서에는 시가 제일 먼저 나온다. 문학이라는 게 알아서 감상하고 즐기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일일이 분석하고 해체하는 건 잘못된 교육이라고 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우리가 예술을 배우는 목적은 삶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 감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베토벤을 모르고,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미켈란젤로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는 없지만, 품위 있게 살아가는 데는 조금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안다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시를 학습하는 것도 당연히 그렇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분석적으로 시를 해석하는 학교 수업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만 교사 입장에서 그런 수업 방식을 멈출 수도 없다. 아이들이 분석할 줄 모르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관심에서 멀어지고, 문학을 삶에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줄을 세우는 시험을 봐야 하니 딱 떨어지는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고, 그런 수업도 너무나 익숙한 옷처럼 편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도 “알아서 필기하고 싶으면 하고, 자유롭게 해라.”보다는 “자, 여기부터 공책에 꼼꼼하게 적어라.”라고 하는 게 지금껏 보아왔던 교실의 풍경이다. 교사가 지시하는 게 쉽다. 그래서 이걸 바꾸는 것을 일부러 회피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난 지금, 고전적인 방식을 버리지 말아야만 되는(못하는 게 아니라) 이유를 알게 된다. 내가 수업을 한 시는 정현정 시인의 ‘나무들의 목욕’이다. 봄철에 산에 꽃나무들이 색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꽃을 비누 거품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이유가 깨끗하게 씻은 후 그 자리에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드는 소중한 행위를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수준에 잘 들어맞는 아름다운 시이다. 

시를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관련 용어를 알려주었고, 이미 설명까지 다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용어들을 칠판 가득 늘어놓았다. 참 많기도 하다. 시에서 말하는 사람인 화자, 시의 3요소라고 하는 운율, 심상, 주제, 운율은 내재율과 외형률이 있는데, 정해진 운율이 있는 시를 정형시라고 하고, 시조가 여기에 속한다. 시조는 일정한 음보가 있는 시다. 심상은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말하는데, 시각적, 청각적 심상 등 다섯 가지가 있고, 두 가지 이상 결합한 것을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비유가 많이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직유법과 은유법, 의인법이 있다. 의태어나 의성어를 사용하면서 운율을 만들고 생생함이 느껴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정서라는 말과 서정적이라는 말도 쓰고, 제재라는 말도 있다. 상징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정의가 있기는 한데, 추상적이 뭔지를 모르니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필수다.

참 많기도 하다. 우리가 입말로 사용하지 않는 것, 즉 글말이다. 평소에 글을 자주 접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등장하지도 않는 단어들이다. 그러니 이것들을 익혀야 하는 게 어렵긴 할 것이다. 기본적인 개념어들이 한자투성이기에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한자를 풀어서 말할 수밖에 없다. 은유법의 ‘은’은 숨어 있다는 뜻이고, 직유법의 ‘직’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니 은유법이 더 어려운 비유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이런 낯선 용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용어들이 교과서에 등장하고 시험 문제에도 쓰이니 모르면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 문학을 내 맘대로 즐기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용어를 이해하고 주변적인 지식을 쌓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것도 배움의 한 과정이다. 더 큰 앎을 위해서는 이런 과정들이 꼭 있어야 한다. 

A.I를 제대로 부리려면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하고, 제대로 된 명령을 내려야 하는 건 기본이다. 정교한 언어 능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학교 공부가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끌어가는 게 교사의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발표도 시키고, 엉뚱한 대답에도 맞장구를 쳐주려 한다. 결국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아이들의 언어는 훨씬 커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야 뻔히 아는 사실이지만, 중학교를 들어온 우리 아이들에게, 국어 공부는? 참 힘들다. 

 

--------------글쓴이 엄재민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교사가 됐다. 교사 공동체 ‘따로또같이’를 운영하며 젊은 교사들과 간담회, 워크숍, 독서 활동을 하며 25년 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국어 교사로서 ‘인문독서를 통한 나를 찾기’, ‘생각과 표현’ 수업을 통해 읽고 쓰는 활동을 일 년 내내 하고 있다. 매년 백일장 수상 작품집을 별도로 만들어낼 정도로 늘 글과 함께 살아가며, 학생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한다. 블로그에 1일 1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신규 교사들에 대한 위로를 담은 저서 <당신은 제법 괜찮은 교사입니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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