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망신을 줬다고!”
“야, 선생님이 피드백을 준거잖아!”
“친구들 다 보는데서 얘기하는 게 망신이지!”
“아니 가르쳐주신 거잖아. 뭐라 하신 게 아니잖아.”

4분단 끝자락 준호와 효리가 쉬는 시간에 티격태격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얼른 효리를 따로 불렀다.
“효리아,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있지?”
“아니 그게요. 선생님은 왜 제 배움공책을 아이들 앞에 공개하셔서 망신을 주세요?”
순간 너무 당황했다.
그 대상이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하고 착실하다고 생각한 효리라서 놀랐고
다짜고짜 공격적인 말투를 날리는 당돌함에 더 놀랐다.
흥분한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나도 숨을 골랐다.

요즘 아이들에게 배움노트 정리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2교시에도 어제 작성한 노트를 보며 함께 얘기를 나눴다.
필기를 처음 해보는 아이들이 많아
정리 잘한 아이들 자료를 예시자료로 보여줬다.
하루하루 하트 개수가 많아지자 좋아라 하는 아이들.
효리는 글씨체도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그런데 내용 면에서 구체성이 떨어져 그 얘기를 짚어줬다.
‘수학시간에 혼합 계산을 배웠다’ 대신
덧셈뺄셈곱셈이 섞인 실제 문제 하나를 만들어 풀고 개념을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효리는 그 대목에서 상처를 받았나 보다.

 

 

“아, 선생님은 너를 망신 주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니 조금 미안해진다.”
효리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4학년 때도 선생님이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해서
학교 그만 다니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이렇게 따로 불러내 얘기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친구들의 주목을 받아 이상한 아이로 보일 것 같다고 했다.
한참을 효리와 이야기를 나눈 후 교실로 돌려보냈다.
앞으로는 하교 후에 얘기하자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부분에서 뭘 놓친 걸까?
또 내가 욕심을 부렸나?
사춘기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 조심했어야 했나?
하루종일 마음이 쓰였다.
효리를 더 쳐다보고 더 얘기를 걸어보고 더 챙겨도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아이.
그래도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하며 하교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매년 달라지는 아이들의 수준과 성향으로 학기 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서로 적응하는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날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흔치 않다.
더군다나 교사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아이라니.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저 아이는 어떤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걸까.

단순 발랄 끝판왕 작년 제자들이 생각난다.
속이라는 게 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너무 털털하고 긍정적이어서
웬만한 잔소리도 애교로 응수하던 아이들이었다.
아, 이 녀석들 보고 싶네.

그나저나 우리 효리 오해는 풀렸을까?

착각이었다. 

 

 

--------------글쓴이 유현미는?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교사로 전직,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로 16년째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교 체험을 모은 책 <어서 오세요, 좌충우돌 행복 교실입니다>를 펴냈다. 또 사춘기 두 딸을 키우며 스트레스 ‘만땅’이던 어느 날, 지나가는 동네 산악회 버스를 보고 마음이 동해 산행을 시작했다. 산을 다니면서부터 걷기 매력에 빠져 사시사철 늘 산과 들을 누비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함께 걷자고 늘 꼬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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