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용주사는 흥미로운 사찰이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기리는 위패를 모신 왕실 사찰인 것.
여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 사연이 더 있다.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인 조지훈(1920~1968)이 이 절에서 그 유명한 ‘승무(僧舞)’라는 명시를 탄생시켰다.
용주사 한 켠에 돌로 된 ‘승무’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글씨가 흐릿하여 보지 못하고 놓치는 방문객들이 많다.
궁금해서 조지훈의 책(1959년에 쓴 ‘시의 원리’)을 찾아봤더니 당시 용주사에서 비구니승의 승무를 본 감흥과 산고의 고통이 대단했던 듯도 싶다. 조지훈이 용주사를 찾은 게 열아홉 때였다니 놀라울 뿐이다.
“내가 승무를 처음 본 건 열아홉 살 적 어느 가을날이다. 용주사(당시는 수원)에 큰 재(齋)가 들어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고 말았다. 재가 파한 다음 날에는 밤 늦게까지 절 뒷마당 아래에서 넋 없이 서 있는 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글을 보면 승무 춤을 보고 절에서 하루를 묵은 것 같다. 11개월 뒤인 이듬해 여름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시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 조지훈은 죽어서 어머니 곁에 묻혔다. 1968년 고향인 경북 영양에 있던 어머니의 묘를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했다. 더 자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 그해 조지훈이 세상을 떠나면서 모친 묘 아래에 무덤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일전에 남양주 작은 야산에 자리잡은 조지훈의 묘를 찾았을 땐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날씨는 꽤 추웠지만, 모자의 정은 따뜻해 보였다. 조지훈 묘를 쓰다듬듯 눈을 쓸어내려 주었다. 소리없이 눈이 뚝뚝 떨어졌다. <글·사진=노운, 여행작가>